스타인웨이를 못 품은 삼익악기, 사모펀드에 대박을 안기다
2013년 초, 삼익악기가 미국의 명품 피아노 제작업체 스타인웨이를 공개매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삼익악기는 스타인웨이의 지분 26.87%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삼익악기가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을 장외에서 공개적으로 사들이면 스타인웨이는 삼익악기의 100% 자회사가 된다. 삼익악기는 국내외 피아노 시장에서 메이저 업체였지만, 중저가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글로벌 시장은 물로 떠오르는 피아노 수요지 중국에 대한 시장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저가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절실했다. 고가의 명품 이미지를 구축한 스타인웨이를 완전 자회사로 만들면서 시너지를 내보내겠다는 것이 삼익악기의 생각이었다. 그 해 3월 삼익악기가 외부 자금을 조달하자 공개매수 소문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자금 조달 방식은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채 발행이였다. CB나 BW는 '채권'과 '주식'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일단 채권의 이자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발행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회사 측에 신주 발행을 요구해서 미리 정해놓았던 싼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다. 즉 CB와 BW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노릴 수 있는 주식연계채권이다.
300억 원 어치의 회사채를 사모로 발행
삼익악기는 BW 200억 원, CB 100억 원 등 총 300억 원 어치의 회사채를 사모로 발행했다. 투자자는 IBK기업은행이 조성한 사모펀드(일자리창출사모투자 전문회사, 이하 일자리펀드)와 산은캐피탈 등 두 곳이다.
그런데 7월에 글로벌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선수를 쳤다. 주당 35달러에 스타인웨이를 공개매수를 선언한 것이다. 스타인웨이를 잡기 위한 글로벌 큰손들의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번에는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존 폴슨이 주당 38달러를 제시하며 뛰어들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삼익악기도 질세라 주당 39달러를 주주들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결국 스타인웨이는 존 폴슨의 품에 안겼다. 그가 제안 가격을 40달러로 끌어올리자, KRR과 삼익악기는 손을 들었다.
삼익악기는 존 폴슨의 공개매수에 응해 보유 지분을 1635억 원에 팔았다. 처음 매입 가격 대비 두 배가 넘는 차익을 얻었다. 당시 삼익악기의 시가총액이 1400억 원, 연매출이 1500억 원 수준이었음을 감안할 때 상당히 큰 돈이다. 삼익악기는 매각 대금 중 일부를 단기 차입금 상환과 부실 계열사 정리 등 체질 개선에 활용했다. 그러자 주가가 오름세를 탔다. 중국에서의 매출이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가는 탄력을 받았다. 일자리 펀드와 산은캐피탈에게는 대박의 기회가 다가왔다. 이들이 CB와 BW에 투자하면서 확보한 신주 발행 요구 가격은 주당 1500원이었다. 투자 당시 삼익악기의 주가 흐름을 기초로 책정한 가격이다. 이후 삼익악기 주가는 2000원에서 4000원을 향해 달려갔다. 주가가 2500만원만 돼도 주당 1000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투자 1년여 만인 2014년 4월 이후부터 일자리펀드와 산은캐피탈은 CB의 주식 전환권과 BW의 신주 인수권을 행사했다. 당시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얻은 차익은 170억 원 정도로, 수익률은 80%대였다.
CB와 BW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서, 그리고 투자자의 금융 상품으로서 CB와 BW가 갖는 기본적 특징들에 대해 알아보자. 삼익악기가 2013년 3월 14일 공시한 CB 발행 내용 살펴봤다.
삼익악기는 CB 100억 원어치를 발행했다. IBK기업은행이 만든 일자리펀드에서 67억 원, 산은캐피탈에서 33억 원어치의 CB를 인수했다. 이렇게 회사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사모'라고 한다.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면 '공모'가 된다. 사모의 경우 회사와 특정인은 발행 조건 등에 대해 사전 협의를 한다.
전환 가격은 주당 1500원이다. 삼익악기 주가가 전환 가격을 크게 웃돌면 투자자는 신주 발행을 요구할 것이다. 회사는 주당 1500원으로 계산해 채권 원금만큼의 신주를 발행해 주고, 대신 채권은 없앤다. 이렇게 사채권을 주식으로 돌린다고 해서 '전환사채'라고 부른다.
주가가 2000원이 됐다고 하자. 투자자는 전환받은 주식을 시장에서 매각하면 주당 500원의 차익을 얻는다. 물론 주가가 1500원 아래여도 전환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1500원보다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잇는 주식을 구태여 회사에 1500원에 발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일자리펀드는 CB에 투자하면서 주당 1500원에 446만여 주 발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일단 확보했다.
[출처] 기업공시 완전정복, 김수헌 지음
댓글